우리는 생성과 소멸의 긴 미로를 거닐며 눈앞의 찬연한 빛 보다 등 뒤의 드리운 그림자에서 우리네 소소한 시간의 지문을 보게 되었다.
우리가 이미지를 욕망하는 것은 무한히 부풀려가는 이미지의 자기증식 욕망처럼 이미지의 욕망이 곧 우리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증식욕망에서 한 발자국 멀어져 소소한 자신들 내면을 담아내려 마음 쓴 사진가들의 체화된 시선을 펼쳐본다.
김낙용
1947년 충남 태안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계성여자고등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하고 정년퇴직했다.
중앙대학교 평생교육원 학점은행제 사진학과에서 공부하였다. 사진 집단 「꿈꽃팩토리」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충남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와 가로림만을 기록하는 사진 작업을 했고, 서울 가톨릭사진가회가 추진한 전국의 천주교회 공소를 촬영하여 만든 사진집《한국 천주교회의 뿌리-공소》을 엮어내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꿈꽃팩토리 4기 그룹전 《시간의 지문》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그룹전에 참가하였다.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 북서부에 있는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곳에 12사도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의 유해를 안치한 성당이 있다. 스페인에서는 성 야고보를 산티아고라고 부른다. 산티아고는 스페인의 주보성인으로 스페인 역사의 고비마다 나라를 지켜준 영웅이다.
유럽의 크리스쳔들은 산티아고의 유해가 안치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수백 Km에 이르는 길을 걸어서 순례하는 10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길은 이제 세계인의 순례 길이 되었다.
나는 2016년 4월 21일부터 6월 11일까지 52일간,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그리고 대서양을 바라보이는 마을 피스테라와 묵시아까지 900여 Km를 걸어서 순례하였다.
순례 길에서 낯선 사람들과 자연을 만나며 매일 새로운 날들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경이로운 기쁨이었다. 매일 20여 Km씩을 걷는 것이 힘겨웠지만 지치지 않고 걸으며 사진으로 여정을 기록하였다. 이 기록에는 세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담겨 있다.
송내순
경영학을 전공하고 사진집단 ‘꿈꽃팩토리’와 ‘내셔널지오그래피 아카데미’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2015년 <전주국제사진제>, <서울사진축제>, <천안 아트페스타>, <서울뉴욕포토페스티벌>에서 수상했다. 2016년 토포하우스에서 열린 <가가전> 류가헌에서 열린 <시간의 지문> 단체전에 참가했으며, 2017년 류가헌에서 흐르는 집 개인전, 2017년 제4회 수원국제사진축제 단체전, 2018년 남산갤러리 단체전, 현재 사진집단 ‘꿈꽃팩토리’와 스튜디오 ‘P.325’ 소속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신의 산
마을과 마을을 잇는 좁고 험난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그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곤궁한 삶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낙천적이고 건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안나푸르나 봉우리마다 신들이 산다는 거대한 설산은 낯선 여행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고 있다.
환한 그늘
나는 아슴푸레하게 스며드는 빛의 벽을 둘러 또 다른 '들여다 보기'를 시도한다.
보일 듯 말 듯 알듯 모를 듯 저 벽 너머에 지나온 삶과 지나온 내 모습이 교차하며 기억 속에서 아른거린다.
보이는 자연과 감춰진 자연이 결코 둘이 아니고 남이라 생각했던 것들 속에 내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떨어져 나를 말할 수 없음을 희부연 한 빛의 스며듦을 통해 발견한다.
이제는 잡히지 않는 것들에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쉽게 잡히지 않기에 아름다운 것이라하는 걸,
이제는 알기에.
전시 이력
<2013년 동강국제사진전> Growing Up 2013년
<2014년 누리전> 사진공방협동조합 공간 291 누리전
<2015년 서울사진축제> Find Your Seoul
<2015년 전주국제사진제> 행복한 조우
<2015년 동강국제사진작가전> 갤러리 나우
<2016년 개인전> 갤러리 류가헌 (환한 그늘)
<2016년 초대전> 파리 ICONOCLASTES GALERIE
<2016년 초대전> 진주 미르 아트홀
<2017년 전주 국제사진제> 갤러리 NOON
<2017년 Reappearing Memories> 뉴욕 브루클린 Arthelix Gallery
<2017년 개인전> 아흘 d'e'te' Galerie
2011-2013년 <중앙대학교 지식교육원 사진아카데미 수료>
2014년 <내셔날 지오그래픽 사진아카데미 수료>
2015-2016년 <사회공익적 사진집단 꿈꽃팩토리 수료>
현 사회공익적사진집단 꿈꽃팩토리와 NGPA사진가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제목 : 검은 고요
이 한준 / Han joon Lee
단체전
2014년 ‘P&I: Photo&Travel’
2014년‘한국,터키 UNESCO 문화교류전’
2014년‘A-Art Fair’
2015년 ‘수원국제사진전Festival’
2015년 ‘전주국제사진Festival’
개인전
2016년 ‘위대한 도전’: 장애인 스키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삼육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현대해상화재보험(주))
2017년 ‘우아한 욕망’ (갤러리 이즈)
사진집
2014년 Diaspora
2014년 유리도시 프로젝트: 우아한 욕망
2015년 유리도시 프로젝트: 행당동
정영길
2013년 'Nationalgeographic photoacademy(NGPA)' 및 2014년 '예술의 전당 사진Academy'를 졸업하고, 2015년까지 사진집단 '꿈꽃Factory(꿈꽃)'에서 사진을 공부하였다.
단체전으로는 NGPA소속으로 2014년 마사회 주관 '제1회 말과 아티스트의 공감 사진전’과 꿈꽃소속으로 2014년 'P&I: Photo&Travel', 'A-Art pair', 2015년 '수원국제사진Festival', '유리도시 project', '서촌사진전', '전주국제사진Festival'에 참여하였다.
개인전으로는 2017.11.7.-11.13 ‘The Illusion'으로 Gallery IS에서 전시하였다.
사진집으로는 2013년 <정겨운 땡땡거리>, 2014년 <파수꾼>, <유리도시: Platform>, 2015년 <유리도시 프로젝트: 용산>, 2016년 <땡땡거리>,2017년 을 출간하였다.
제목: 소리 길
한설희 Han shul hee
이화여대 불문학을 전공한 후, 중앙대학교 사진아카데미와 사진집단 꿈꽃팩토리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2011년에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모여 제정한 ‘온빛사진상’(제1회)을 어머니를 주제로 한 <노모>로 수상하였다. 2012 개인전 ‘노모’, 2013 ‘전주국제사진페스티벌’, 2013‘엄마 사라지지 마’ 북 노마드, 2017 ‘엄마’ 눈빛출판사 등이 있다.
제목: 달빛 강
김건우
손때
아버지는 작은 교회의 목사다
40여 년간의 목회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하셨다
그즈음부터 아버지는
조금씩 어린아이가 되어가셨다
아직 봄바람이 차갑던 날
이별할 시간도 없이
교회계단에 앉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손때 묻은 성경
낡은 가방
구석구석 손길이 묻어있는 교회
그 빈자리에서
아버지의 숨결을 느끼며 이별했다.
김 나 리 / kim nari
부산출생
1984년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부산에 정착,
2002년 경성대 서양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2년 개인전를 전후로 다수의 국내외 그룹전에 참가하였다.
2012년 서울로 이주, 홍익대 미술교육원에서 실크스크린을 접하면서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로, 사진공부를 이어오면서 2014년 Coex 개인부스전을 열었고,
2014년 UNEP한국위원회 환경공모전 금상을 수상, 세종회관 예인홀 전시참가,
2014년, 2015년 갤러리 인덱스 제1차, 2차 현대사진공모 선정작가전 참가,
2015년 갤러리 나우, 갤러리 사진창고, 갤러리 이룸 등에서 외 다수 단체전 참가,
2016년부터는 꿈꽃팩토리 5기로서, 천안 아트큐브136전,
2017년 갤러리 류가헌, 갤러리 남산에서 단체전을 하였다.
어느 딸의 이야기
할아버지의 세 아들 중 하나였던 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두 딸 중 하나였던 어머니의
하나 딸인 나는,
할아버지의 네 아들 중 하나였던 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세 딸 중 하나였던 어머니의
막내아들과 결혼하였고,
그 하나 딸과 막내아들의 한 아들은,
할아버지의 여섯 아들 중 하나였던 아버지와
할머니의 네 딸 중 하나였던 어머니의
하나 딸을 만나
조그만 아들 하나를 두었다.
이제,
그 조그만 아이는 자라서
어떤 엄마의 한 딸로 자라난
조그만 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이어가겠지...
나는
안개내리는
부드러운 들판에
얼굴을 묻는다.
신기철
같지만 그저 다를뿐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원곡동 거주민 중 외국인이 85%, 그 중 대다수는 아시아 개발도상국 출신 노동자들이다
그럼 사람들은 이 곳을 어떻게 생각할까‘
안산에서 주거지 중 제일 기피할곳이 원곡동입니다’‘
정말 원곡동은 강력히 없어져야 할 동네라고 생각합니다’‘
원곡동은 외국인이 많고 하여 가기조차 꺼립니다’
‘원곡동 무서운 동네입니다’
원곡동을 검색하니 나오는 댓글들
원곡동의 골짜기 곡[谷] 대신에 울 곡[哭]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내가 본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 같았다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장을 보고
가족들과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퇴근후 친구들과 술한잔 하며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고
그리고 그저 다를뿐이었다
우리처럼 거리를 걷지만 풍경이 다를 뿐
우리처럼 대화를 하지만 언어가 다를 뿐
우리처럼 식사를 하지만 음식이 다를 뿐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었다
같지만 그저 다를뿐
우해미
엄마 만나러 가는 길
길은 목적을 내포하고 길의 끝에는 결과물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잿빛하늘이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기온이 올라 나무마다 싹이 트더니, 어제 오늘은 깉은 미세먼지로 회색빛이다. 덩달아 기온도 쑥 내려갔다. 휴게소를 지나고 터널을 지나고... 익숙해져버린 풍경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명지로 86-1번지. 차에서 내려 발을 디디면 나는 "임정례 어르신의 딸"이 된다. 감정이 서걱거리고 어색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부러 대꾸하며 엄마의 식사를 시중 들고, 동문서답알지언정 시시콜콜 묻기도 한다. 웃으며 마주치는 분들의 얼굴표정에서는 이미 '착한 딸'이 되어버렸다.
마냥 불편한 마음으로 오늘은 엄마와 딸이 함께 걷는 길은 목적이 없어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냥 익숙한 풍경이었어야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버렸다.
함께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관계의 단절과 소통의 부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평행선 같은 관계였다. 엄마의 사간이 치매에 묶이고서야 엄마의 공간안에 나의 시간이 쌓여간다.
전경숙
어머님의 시절유감
1910년에 태어나 열여섯살에 종가로 시집을 오신 시어머님께서는 평생 <봉제사 접빈객>을 실천하며 사셨다. 일 년에 13번의 제사를 모셨고 5번의 차례와 시제를 지내오셨다.
집안에 그 누가 찾아와도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융숭하게 대접을 하셨고 좋은 음식이 생기면 조상님 제사상에 올릴 것을 먼저 갈무리해두시고 그다음에 남편과 아들 상을 챙기셨다.
100살이 넘어 정신이 흐려지셨을 때에도 제삿날 만큼은 명확하게 기억하셨고 당신을 돌봐드리러 온 요양보호사에게도 정성껏 손님대접을 하셨다.
유교와 가부장적인 제도에 대한 어머님의 신념은 당신에게도 억울한 면이 있으셨을텐데 돌아가실 때 까지 변함이 없으셨다. 온화하고 자애로운 성품이셨지만 며느리의 도리에는 매우 엄격하셨다. 가끔 마음이 상하시면 “내가 나거들랑 더 일찍 태어나던가 아니면 요즘 시절에 태어났으면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았을텐데...”
하시며 당신이 살아오신 시절을 탓하셨을 뿐이다.
본인 스스로 제도를 바꾸기보다는 “내 죽거들랑 느그는 이래 살지 마래이.” 유언을 남기셨을 뿐...
조은선
성신여자대학교 졸업 / 경영학사 및 금융학사
중앙대학교 평생교육원 사진학과 재학 중
글로벌 펀드평가사 Morningstar 펀드애널리스트/연기금 컨설팅 업무
Vogue 매거진 하우스인 Playstudio 실습
2017 온빛사진상에 <경단녀 조대리>로 최종 10인에 노미네이트 됨
중앙대학교 평생교육원 포토저널리즘1 수강생 단체 사진집 ‘Dream Lap project 2017’
경단녀 조 대리
조 대리는 내 얘기이자, 우리 두 언니의 이야기다. 조 대리는 대학 졸업 후, 바늘구멍 같은 취업난을 뚫고 회사에 입사했다. 서툴렀던 수습 기간을 지나 사원이 되었고, 사원에서 주임으로, 주임에서 대리로 승진하며 점차 실무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력을 쌓았고, 이제는 그동안 꿈꿔 온 미래를 향해 비행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30대 초중반이 되자 조 대리는 결혼을 하게 되고 아기를 출산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삶이 시작되는 듯 했다. 하지만 삶이 조금씩 변했다. 출근길이 어린이집 길로 바뀌고, 회의실이 아닌 문화센터로 바뀌게 되면서 ‘조 대리’의 일상에서 멀어지며, ‘엄마’라는 신분으로 고군분투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조 대리는 여성 근로자로서 법적으로 3개월의 출산전후휴가, 1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출산장려금, 출산 및 육아휴직, 아동수당 지급, 남성 육아휴직 제도 개선 등으로 정부는 출산과 육아를 독려하지만, 실질적으로 눈치만 보고 제대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직장 상사는 출산전후휴가 2개월 만에 직장에 복귀했고, 이에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어쩐지 과시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막상 육아휴직에 들어가거나 육아휴직 후 업무에 복귀하는 동료들은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조 대리는 ‘대리’라는 직급을 가슴에 매단 채, 사회와 가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외로운 외줄 타기를 시작했다. ‘대리’가 조 대리의 마지막 직급이 되는 건 아닐까.
많은 여성이 누군가 덮어버린 유리 천장에 막혀 더 나아갈 수 없이 발목을 잡힌다. 이 중 대다수는 육아와 경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 시대의 대리들이다. 바로 내가 될 수 있고, 또 우리 언니일 수 있는 ‘조 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