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전 사람 장소 사물: 은유와 의미 2025 제18회 전주국제사진제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국제전 [주제전]
‘사람, 장소, 사물: 은유와 의미 People, Places, Things: Metaphor & Meaning’
예술감독 - Eric Weeks (펜실베이니아 예술디자인 대학 예술학과장)/ 장소 - 갤러리에이피나인Artist - 케이티 머레이(Katie Murray), 수프라나브 대시(Supranav Dash), 메리 베리지(Mary Berridge), 스테이시 르네 모리슨(Stacy Renee Morrison), 셰인 헐버트(Shane Hulbert), 스티브 지오빈코(Steve Giovinco), 마날 아부-샤힌(Manal Abu-Shaheen), 세바스찬 메이자(Sebastian Meija), 제라드 프란시오사(Gerard Franciosa), 트완 피터스(Twan Peeters), 케이틀린 다니엘슨(Kaitlyn Danielson), 모니카 두빈카이테(Monika Dubinkaite)
"사진 촬영은 단순한 개인 예술가의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중심적이며, 신속하고, 매개적인 동시에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적 탐구임을 보여준다. (샬롯 코튼)"
사진 촬영을 설명할 때 흔히 "테이크(Take)"라는 동사가 사용되지만, 이는 사진이 작가의 의도보다 주제를 중심으로 문서화되는 과정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렌즈 기반 미디어를 자기표현의 도구로 활용하는 예술가들은 단순한 주제 재현을 넘어 더 깊은 개념과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다.
이들은 사회적 관심, 정체성, 역사·문화적 해석, 현실 관찰, 심리적 은유 등을 다루며 이를 설명할 때는 ‘테이크’ 보다 창작자의 의도와 결정을 반영하는 보다 적절한 동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진은 제작자와 관객 사이에서 다층적으로 작동하는 소통 방식이며, 작품에 대한 해석 또한 환원적이지 않고 확장된 읽기를 초대해야 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화가가 모델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고 한 것처럼, 사진 또한 외부 세계를 기록하는 동시에 예술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매개체이다.
케이티 머레이[Katie Murray]
케이티 머레이(Katie Murray)의 레슬링(Wrestling) 시리즈는 사진의 다면적 속성을 잘 보여준다. 레슬링은 고대 그레코로만 시대부터 이미지화되어 온 전통적인 주제이며, 머레이의 사진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그녀의 작품은 추상적이고 형식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사진적 탐구이기도 하다.
로버트 아담스(Robert Adams)는 사진 속의 아름다움에서 "형태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삶의 혼돈과 무의미함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해 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머레이는 레슬러들의 얽힌 신체를 통해 삶의 질서와 의미를 탐색하며,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깊은 철학적 성찰로 이어진다. 특히 그녀의 사진 속 레슬러 중 한 명은 그녀의 아들로, 이는 작품에 더욱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머레이의 사진 속 레슬러들은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니라, 사진과 작가의 상상 속에서 재창조된 새로운 고독한 토템(Totem)으로 기능한다. 그녀의 작품은 개인적 기록이면서도 동시에 외부 세계를 반영하는 다층적 문서이며, 현실을 넘어선 은유적 시각언어로 확장된다.
수프라나브 대시[Supranav Dash]
수프라나브 대시(Supranav Dash)의 마진 트레이드(Margin Trade) 시리즈는 급변하는 문화 속에서 사라져 가는 인도 전통 상인들의 모습을 기록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거래 방식은 현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대시는 이를 사진을 통해 보존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단순한 다큐멘터리를 넘어선다.
첫째, 대시의 사진은 흑백 이미지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형식적 완성도와 시각적 매혹을 갖춘다. 둘째, 그의 작품은 어빙 펜(Irving Penn)과 어거스트 샌더(August Sander)의 20세기 초상사진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셋째, 대시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축한다. 미국에서 활동하며 예술적 시각을 확장한 그는, 콜카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그의 사진에는 내부자이면서 동시에 외부자인 복합적인 시선이 스며들어 있으며, 이는 작품 속에서 마치 진자처럼 흔들리는 복잡한 시각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대시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변화하는 전통과 개인적 기억이 교차하는 시공간을 형상화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메리 베리지[Mary Berridge]
메리 베리지(Mary Berridge)의 가시광선 스펙트럼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젊은이들의 독특한 개성을 기념하는 사진 시리즈이자 책이다. 베리지는 서정적인 순간, 빛, 구성을 활용하여 자폐증에 대한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경험을 담아낸다. 이 사진들은 단순한 다큐멘터리를 넘어, 자폐 청년들과 그 부모의 글을 포함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 깊이 있게 전달한다. 또한, 베리지는 자폐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담아, 사회가 이들의 다양한 일상을 이해하고 포용할 것을 촉구한다.
그녀의 사진은 개인의 차이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반영하며, 사회적 인식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베리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다름을 축하하고, 보다 포용적인 시각을 제안한다.
스테이시 르네 모리슨[Stacy Renee Morrison]
스테이시 르네 모리슨(Stacy Renee Morrison)의 더운 여름 날씨 속에서 기차역까지 가는 길 시리즈는 실제로 카메라 앞에 존재하지 않은 인물들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그녀는 1920년대 초 폴란드에서 촬영된 할머니의 문법 학교 사진을 스캔하고, 이를 정밀하게 편집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했다. 모리슨의 할머니는 나치 독일이 제 3제국 집권 직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지만, 사진 속 젊은 여성들 중 상당수는 홀로코스트로 인해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기억하며, 모리슨은 아우슈비츠의 죽음의 수용소를 방문하고, 직접 촬영한 구름 사진과 역사적 아카이브 이미지를 나란히 배치한다.
그녀의 작업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과거의 비극을 조명하며 현대 사회의 외국인 혐오와 편협함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는다. 작품에는 사람, 장소, 사물이 포함되어 있지만, 진정한 의미는 피사체 외부에서 형성되며, 관객의 해석을 통해 완성된다.
모리슨의 병렬적 이미지 배치는 개인적 기억과 역사적 상흔을 연결하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깊은 사유를 유도하는 예술적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셰인 헐버트[Shane Hulbert]
호주 사진작가 셰인 헐버트(Shane Hulbert)는 Constructed Miniatures 시리즈에서 작은 모델을 제작하고 촬영하는 방식으로 사진의 제작적 측면을 강조한다. 그의 작품은 처음에는 단순한 미니어처와 3D 프린팅된 인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주 문화의 특정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을 신화화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음이 드러난다.
헐버트의 사진은 단순한 축소 모형이 아니라, 사회적·정부적 행동과 그로 인한 과잉 반응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각적 장치이다. 그는 호주의 특정 경험을 탐구하는 동시에, 모든 사회가 가진 신화적 서사와 그 이면의 범죄적 요소를 비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그의 작품은 역사의 재해석과 사회적 통념에 대한 도전을 통해 관객이 자신의 문화와 신화를 스스로 반추하도록 유도하는 철학적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지오빈코[Steve Giovinco]
스티브 지오빈코(Steve Giovinco)의 처른(Chthonic)과 다크랜드(Dark Land) 시리즈는 언뜻 보면 인공지능이 생성한 디지털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린란드의 외딴 지역에서 촬영된 장시간 노출 야간 사진이다. 그는 최종 이미지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직관적으로 움직이며 촬영 장소를 찾고 장비를 설치한다. 그의 작업 과정은 명상적이며, 유일한 광원은 달, 별, 그리고 때로는 오로라뿐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지오빈코는 기후 변화와 지구, 인류의 취약성을 시각적으로 탐구하며, 예술을 치료적이고 생명을 긍정하는 해독제로 활용한다. 그의 사진은 자연의 신비와 불확실성을 기록하면서도, 인간 존재의 한계를 성찰하는 깊은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마날 아부-샤힌[Manal Abu-Shaheen]
마날 아부-샤힌(Manal Abu-Shaheen)의 베이루트 시리즈는 과거 분쟁으로 인한 물리적 파괴를 견뎌낸 레바논의 도시 풍경을 기록하면서, 문화적 충돌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레바논계 미국인 사진작가로서 그녀의 작품은 문화적 모순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탐구한다. 특히, 베이루트 시내에 걸린 서구 광고 이미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서구의 지속적인 문화적·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작용한다. 아부-샤힌은 카메라를 어디에 놓고, 언제 셔터를 누를지를 신중히 선택하며, 불평등과 식민주의의 유산을 시각적으로 선언한다. 서구의 명품 광고가 중동의 잔혹한 역사적 배경과 공존하는 아이러니는 그녀의 사진에서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세바스찬 메이자[Sebastian Meija]
세바스찬 메이자(Sebastian Meija)의 쿼이 오아시스(Quai Oasis) 시리즈는 산티아고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야자수를 기록하며, 도시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이 살아있는 ‘자연의 오벨리스크’에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메이자는 이 장면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고립된 자연의 존재를 통해 생존과 인내의 은유를 만들어낸다. 야자수는 산티아고의 현대적 도시 구조보다 오래된 존재로, 그의 사진은 자연이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아 있는 모습에 대한 경탄이자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이미지는 자연과 개인주의의 인내를 기념하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의 풍경이 사라진 것에 대한 향수일까? 이는 결국 시청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며,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열려 있는 의미를 제공한다. 메이자의 작업을 비롯해 이번 전시의 모든 작가의 작품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한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지닌 복잡성과 다층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점이다.
제라드 프란시오사[Gerard Franciosa]
제라드 프란시오사(Gerard Franciosa)의 앨리슨 폰드(Alison Pond) 시리즈는 1인칭 시점에서 교외의 새롭게 성장하는 식생을 바라보며, 인간에 의해 조작된 자연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그의 사진이 역설적인 이유는 인간이 개입하여 변화시킨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이 여전히 사진가와 관람자 모두에게 위안과 평온함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프란시오사와 같은 사진작가들은 자연과 소통하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진 촬영을 실천하며, 이를 통해 자신만의 감각적 경험을 구축한다.
이 사진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작가가 작품을 제작할 때 느낀 평화와 웰빙을 공유하며, 종종 간과되었던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그의 사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과 어떻게 관계 맺고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장을 제공한다.
트완 피터스[Twan Peeters]
트완 피터스(Twan Peeters)의 디퓨전(Diffusion) 시리즈와 가장 안쪽에 있는 사진(The Innermost Picture)은 깨달음에 도달한 후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업이다. 그의 사진은 영적 탐구의 과정이자, 사토리(깨달음)를 상징하는 추상적 시각 경험이다. 피터스는 사진을 통해 자신의 형이상학적 존재를 탐구하며, 그의 작품은 선종(禪宗)의 교리와 유사한 세계관을 제시한다. 그는 주변 환경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기록하고, 이를 디지털 연금술을 통해 형상화한다.
표면적으로 그의 사진은 일상적인 세계의 모습과 가정 환경을 구성하는 사물들을 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명상의 아이콘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은 마크 로스코(Rothko)의 회화나 티베트 승려들의 만다라와 달리, 시각적 경험을 통해 내면의 평온과 초월적 인식을 유도하는 사진적 명상 도구로 기능한다.
케이틀린 다니엘슨[Kaitlyn Danielson]
케이틀린 다니엘슨(Kaitlyn Danielson)은 21세기와 19세기 사진 역사 사이를 넘나드는 ‘연금술사’ 같은 예술가이다. 그녀의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 시리즈는 아이패드를 직접 노출하여 제작한 아날로그 시아노타입의 디지털 사본으로, 초기 여성 사진 선구자 안나 앳킨스(Anna Atkins)에게 경의를 표하는 작업이다. 다니엘슨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아날로그 기술을 새롭게 해석하며, 사진의 본질과 지각의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녀의 작품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현실과 그림자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과 유사하게, 사진이 단순한 이미지인지, 아니면 더 깊은 존재론적 의미를 품고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유도한다. 언뜻 보면 단순한 식물의 재현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작업은 사진 매체의 다층적 역사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지적 실험으로 확장된다. 다니엘슨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 디지털과 아날로그, 현실과 인식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사진적 실험의 장이라 할 수 있다.
모니카 두빈카이테[Monika Dubinkaite]
마지막으로 모니카 두빈카이테(Monika Dubinkaite)의 Nothing Once Gold 시리즈는 일상적인 오브제를 세심하게 배치하여 형식과 색상의 논리적 조화를 이루는 정물 사진 작업이다. 평범한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오브제들이 구성되지만, 그 배치는 마치 현실을 구성하는 원자를 감성적으로 재구성한 듯한 정교한 질서를 갖는다. 이 작품들에서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이 의미를 갖는다.
두빈카이테는 단순히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장면을 창조하며, 관객이 자신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재평가하도록 유도한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그녀의 감각과 지각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사진가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진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고 철학적·사회적·개인적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작품들은 단순한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지닌 복잡성과 다층적 해석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사진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사유의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이번 전시를 통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작가들이 선택한 이미지의 순간과 그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며, 사진이 담고 있는 보다 넓은 세계를 탐색해 보길 바란다.
